

보성읍에서 국도 2호선을 따라 순천 방면으로 30km 남짓 달리면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주무대인 벌교읍에 닿는다. 민족 분단의 비극을 상징하는 이 소설은 조정래 작가가 집필한 10권 분량의 대작으로, 우리 현대사의 격랑을 깊이 있게 그려냈다. 소설 속 배경은 만주와 서울 등으로 확장되지만 그 중심 공간은 언제나 벌교다. 비록 허구의 이야기일지라도 작가가 생활했던 벌교를 배경으로 삼았기에, 이곳 곳곳에는 여전히 작품의 흔적이 생생하게 남아 있다.
그 중심에 자리한 곳이 바로 벌교역이다. 1930년 12월 20일 경전선 보통역으로 영업을 시작한 벌교역은 일제강점기와 해방, 한국전쟁과 산업화를 거치며 지역민들의 삶과 궤를 같이해 왔다. 소설 ‘태백산맥’ 속에서는 이념 갈등으로 갈라졌던 형제가 죽음 앞에서 화해하는 상징적인 장소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처럼 벌교역은 단순한 교통시설을 넘어 시대의 상처와 화해의 이야기를 품은 특별한 공간이다.
벌교 하면 빼놓을 수 없는 ‘꼬막’의 추억도 이곳에 서려 있다. 겨울철이면 벌교역은 꼬막을 사러 온 사람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1987년 신축된 현재 역사의 기와지붕은 마치 꼬막 껍질을 닮은 듯하여 정겨움을 더한다. 덕분에 벌교역은 늘 짭조름한 바다 내음과 함께 지역의 정서를 고스란히 간직한 상징물로 남았다.
한때 벌교역은 지역민들에게 생존의 통로이기도 했다. 보성 지역 농민들은 정성껏 키운 농산물을 머리에 이고 열차에 몸을 실었다. 이들은 남광주역에 내려 남광주시장이나 양동시장에서 물건을 팔며 가족의 생계를 책임졌다. 누군가에게는 배움터로 향하는 통학로였고, 누군가에게는 내일을 기약하는 희망의 열차였던 셈이다.
벌교역은 오늘도 묵묵히 제자리를 지키고 있다. 급변하는 시대 속에서도 이곳에는 사람들의 기억과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다. 소설과 현실이 만나고 과거와 현재가 교차하는 벌교역은 단순한 기차역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우리네 삶의 애환을 실어 나르던 이곳이 앞으로도 지역의 역사를 증언하는 소중한 ‘기억의 플랫폼’으로 남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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