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오노 나나미는 일본 작가이지만 일본보다 이탈리아에서 더 오래 살며 글을 쓴 작가다. 젊은 나이에 단신으로 이탈리아로 건너간 그는 고문서와 유적을 직접 찾아다니며 로마와 베네치아 같은 도시국가의 역사를 자신의 눈으로 확인하고 기록했다. 그의 글은 소설처럼 읽히지만 기본은 역사서다. 상상력을 빌리되 사실에서 벗어나지 않는 방식이다.
시오노 나나미는 역사를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바라본다. 승자만 남기는 기록이 아니라, 번성했다가 결국 쇠퇴하는 인간 사회의 흐름을 끝까지 따라간다. 그녀는 역사는 교훈집이 아니라 재미있게 읽혀야 하는 이야기라고 말한다. 그래서 그녀의 책은 어렵지 않다. 그러나 결코 가볍지도 않다.
■ 베네치아, 바다 위에 세운 선택 — 《바다의 도시 이야기》는 이런 책이다
《바다의 도시 이야기》는 약 천 년 동안 공화제를 유지했던 도시국가 베네치아의 생존 이야기다. 베네치아의 시작은 화려하지 않았다. 로마 제국이 무너진 뒤 훈족과 게르만족의 침입을 피해 사람들이 바다 가까운 개펄과 석호의 섬으로 도망쳐 들어가면서 역사가 시작된다.
농사도 어렵고 사람이 살기에도 불편한 땅이었다. 그러나 바로 그 불리함이 베네치아의 운명을 바꾸었다. 베네치아 사람들은 육지로 나가지 않았다. 오히려 더 깊은 바다 속 석호로 들어가 도시를 세웠다. 그 결과 베네치아는 성벽 대신 바다로 둘러싸인 도시가 되었고, 외부 침입이 쉽지 않은 천연 요새가 되었다. 사람들은 개펄 위에 나무기둥을 박고 건물을 세우고, 운하를 파서 물길을 만들고, 섬과 섬 사이를 다리로 연결했다. 그렇게 해서 150여 개의 섬, 180여 개의 운하, 400여 개의 다리로 이루어진 도시가 탄생한다.
그리고 베네치아는 바다로 나아갔다. 값싸고 효율적인 배를 만들고, 조선소와 창고를 갖춘 항구를 만들고, 상업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여기에 정보 중심 외교와 공화제 정치가 결합되면서 베네치아는 지중해의 강국으로 성장한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 과정을 전쟁 영웅 이야기처럼 그리지 않는다. 대신 신중한 판단, 현실적인 선택, 싸움을 피하는 외교가 어떻게 한 도시를 천 년 가까이 살아남게 했는지를 차분하게 보여준다. 이 책을 읽다 보면 깨닫게 된다. 베네치아의 역사는 단순한 도시의 역사가 아니라 “작은 나라가 살아남는 방법”에 대한 이야기라는 사실을.
■ 성한 자는 반드시 쇠한다 — 그러나 늦출 수는 있다
시오노 나나미가 반복해서 강조하는 역사 인식은 ‘성자필쇠(盛者必衰)’다. 번성한 것은 반드시 쇠한다. 이것은 피할 수 없는 역사적 순리다. 그러나 그는 이렇게 말한다. 지혜로운 정치와 현실적인 선택은 쇠퇴의 속도를 늦출 수 있다.
15세기 대항해 시대가 시작되면서 세계 교역의 중심은 지중해에서 대서양으로 이동한다. 베네치아의 시대는 끝나기 시작한다. 그러나 이 도시는 곧바로 무너지지 않는다. 교역 중심 국가에서 공업과 농업 중심 국가로 방향을 바꾸고, 불필요한 전쟁을 피하며 외교로 시간을 번다. 그 결과 베네치아는 쇠퇴와 멸망을 무려 200년이나 늦춘다.
시오노 나나미는 이 과정을 감정 없이 균형 잡힌 시선으로 서술한다. 어느 편도 악으로 만들지 않고, 모든 선택을 이해하려 한다. 그래서 이 책은 편안하게 읽히지만 읽고 나면 오래 남는다.
■ 당신에게 권하는 이유
《바다의 도시 이야기》는 단순한 중세 도시 이야기가 아니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작은 나라는 어떻게 살아남는가?” 베네치아는 거대한 영토도, 많은 인구도 가진 나라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들은 천 년 동안 공화국을 유지했다. 그 비결은 거창한 힘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선택이었다.
-감정보다 현실을 우선하는 외교
-권력이 한 곳에 모이지 않도록 만든 정치 제도
-자원이 없는 대신 바다를 이용한 상업 경제
-이념보다 국가이익을 우선하는 사고
이 책을 읽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 역사도 떠오른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전략이다. 조선은 농경 국가였고 바다 사람들은 천대를 받았다. 그러나 이순신은 그들을 모아 강력한 수군을 만들었다. 육지에서는 일본군을 막기 어려웠지만 바다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제해권을 장악하면 전쟁의 흐름을 바꿀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베네치아의 해양 전략과 이순신의 전략은 놀랍도록 닮아 있다.
또한 오늘날 세계 정세를 보아도 이 책은 많은 생각거리를 준다. 미국과 중국의 경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중동 전쟁, 중국과 대만의 긴장 등등 강대국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 베네치아의 역사는 “힘만으로 나라가 살아남는 것은 아니다.” 때로는 신중한 판단과 균형 외교, 전략적 모호성이 국가를 지키는 길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 문학처럼 읽는 역사
시오노 나나미는 이렇게 말한다. “나는 사상도 윤리도 심판하지 않는다. 다만 인간의 행적을 끝까지 따라가고 싶다.” 《바다의 도시 이야기》는 바로 그런 책이다. 역사를 재미있게 읽고 싶다면, 그리고 현재를 이해할 힌트를 과거에서 찾고 싶다면 이 책은 좋은 출발점이 된다. 한 도시의 천 년 역사를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우리는 현재 세계를 바라보는 눈도 함께 얻게 된다.
📢 〈보성에서의 문학산책〉 다음 편 예고
다음 연재에서는 프랑스 작가 귀욤 뮈소를 만난다. 그의 소설 《내일》은 감각적인 로맨틱 코미디에 히치콕식 스릴러를 결합한 작품으로, 한때 프랑스 최고의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전 세계 40여 개국에서 번역·출간되었다. 빠른 전개와 반전, 사랑과 시간에 대한 흥미로운 설정이 어우러진 이 작품은 문학이 낯선 독자나 요즘의 젊은 독자들에게도 부담 없이 읽히는 소설이다. 《내일》을 통해 가볍게 읽히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 이야기의 힘, 그리고 대중성과 문학성을 동시에 잡은 귀욤 뮈소의 작품 세계를 살펴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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