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충효사 정문 전경’ 보성 벌교 연등마을에 자리한 충효사 정문 모습. 어모장군 전방삭을 배향한 사우로, 마을과 함께 이어져 충·효의 정신을 오늘에 전하고 있다. 사진=문희옥



- 충효사란?
충효사는 전남 보성군 벌교읍 영등리 435-6(영등길 65)에 있다. 이곳은 전방삭 장군이 의병 훈련장으로 삼았던 장소이자, 장군의 사후 기억이 다시 시작된 공간이다.
전방삭 장군이 왜적과 싸우다 순절하자, 1607년 아들 전홍례는 부친을 기리기 위해 이곳으로 이거해 위패를 모실 사당을 먼저 세웠다. ‘충(忠)과 효(孝)를 함께 세운다’는 뜻이 충효사의 출발이었다.
전방삭장군 유적보전회측에 따르면 1907년 일제 침탈기에 후손가가 급습을 받아 간찰과 문적 등 유품이 약탈되었고 고택이 소실되는 아픔을 겪었다고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무원종공신록권이 남아 장군의 공적을 증명하는 핵심 근거가 되었다.
근래에는 유족과 지역사회의 노력으로 충효사가 다시 정비됐다. 2017년 건립 건의 이후, 2022년 전라남도와 보성군의 건축비 지원을 받아 2024년 2월 5일 준공되며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앞으로 동제, 동상, 전투 안내문 등을 보완해 2026년 10월 완공식과 추모제를 준비하고 있다.
- 전방삭 장군은 누구인가?
전방삭(1545~1598)은 보성 출신의 무장으로, 무과에 급제해 군직을 지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광해군 세자 호종에 참여해 군량 조달과 병력 동원에 힘을 보탰고, 이후 전라좌수영에서 이순신 장군 막하에 들어가 백의종군하며 전투와 병참을 도왔다.
그러나 이순신이 하옥되자 그는 관직의 길을 접고 고향 보성으로 내려와 의병을 조직했다. 약 300명의 의병을 이끌고 벌교 영등을 거점으로 여자만 연안과 보성·고흥 일대를 방어했다.
전방삭의 의병 활동은 정유재란기 연해 방어와 후방 안정에 크게 기여했다. 그는 끝내 1598년 7월 12일 보성 죽전벌 전투에서 일본군의 총탄을 맞고 순절했다. 전후 조정은 그의 공로를 인정해 1605년 선무원종공신 2등에 책록하고, 정3품 ‘어모장군’으로 추증했다.
- 소설과 저술 속의 전방삭 장군은?
정형남의 역사소설 『꽃이 지니 열매 맺혔어라』는 전방삭을 지역을 지켜낸 의병장으로 생생하게 그려낸다. 소설 속 전방삭은 관직보다 현장을 택하고, 전투만큼이나 군량과 병참을 책임지는 실무형 장수로 형상화된다.
이를 사료로 보완한 저술이 노기욱 박사의 『보성군 의병장 전방삭』이다. 이 책은 무과 급제 이후의 행적, 이순신 휘하에서의 백의종군, 의병 창의와 전사 과정을 문헌 기록으로 정리해, 소설의 서사를 역사적 사실로 단단히 받쳐준다. 두 저작은 문학과 학술이 만나 전방삭의 실체를 입체적으로 복원한다.
- 전방삭 장군의 흔적을 찾아서
충효사에서는 위패가 모셔진 사당과 관련 비석 2점, 전방삭 장군을 소개하는 안내판을 둘러볼 수 있다. 사당에서 도보로 약 20분 거리에는 전방삭 장군 가족묘가 있어 참배도 가능하다.
다른 지역에서도 그의 흔적은 이어진다. 선무원종공신록권은 보성의병관에 보관·전시돼 있으며, 여수 충민사 임진추모비에는 전방삭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전종실 전방삭 장군 유적보전회장이 정리한 자료에 따르면, 전방삭은 『이충무공전서』와 『호남절의록』에서 이순신과 뜻을 같이해 죽은 ‘동순절자(同殉節者)’로 기록돼 있다. 문헌과 현장이 서로를 증명한다.
맺음말
전방삭 장군은 관직을 내려놓고 전장을 택한 의병장이었다. 이순신이 바다에서 적을 제압하고 관군이 육지를 지킬 때, 그는 의병과 병참으로 전쟁의 빈틈을 메운 사람이었다. 그가 지켜낸 연해와 후방은 전쟁을 버텨낸 중요한 토대였다.
벌교 영등의 바닷바람 속에서 의병을 훈련시키고, 여자만의 포구를 돌며 침입을 막았던 시간들, 그리고 죽전벌에서 끝내 목숨을 내놓은 선택은 책임의 완성이었다. 충효사에서 시작해 전장으로 이어지는 그의 발자취는, 각각의 자리에서 끝까지 물러서지 않았던 수많은 선택들이 있었음을 말해준다.



![[기자수첩] 세월 엮어 희망 긷는 짚풀공예사업단](https://boseong-senior.com/wp-content/uploads/2026/02/짚풀공예-218x150.png)


![[기자수첩] 초록잎 펼치는 세상, 봄 문턱에서 만난 생명의 숨결](https://boseong-senior.com/wp-content/uploads/2026/02/당산나무-봄소식-218x150.png)


![[기자칼럼] “모자라면 더 먹어”, 그 따뜻한 밥상이 멈췄다](https://boseong-senior.com/wp-content/uploads/2026/01/소화밥상-218x150.png)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