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 문학이 세계의 중심에 섰다. 2025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된 작가 한강은 인간의 고통과 침묵, 그리고 폭력 앞에서 흔들리는 존엄을 끝까지 응시해 온 작가다. 노벨위원회는 그의 작품이 국가 폭력과 집단적 침묵 속에서 지워진 목소리를 문학의 언어로 불러내 왔다는 점을 높이 평가했다. 한강의 소설은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묻는다. 그 질문은 조용하지만, 쉽게 외면할 수 없다.
■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 — 《작별하지 않는다》
이 소설을 읽기 전에 한 가지를 먼저 짚고 넘어가면 좋겠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줄거리를 따라가며 이해하려는 책이 아니다. 사건의 전개를 정확히 파악하려 하거나 역사적 사실을 하나하나 확인하려 들면 오히려 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이 작품은 설명보다 느낌과 질문에 가까운 소설이다. 따라서 인물의 말과 장면 하나하나를 모두 이해하려 애쓰기보다, 읽으며 마음에 남는 문장과 감정에 귀 기울이는 방식이 어울린다.
이 소설에서 제주 4·3은 단순한 과거 사건이 아니다. 한강은 4·3을 아직 끝나지 않은 질문으로 현재에 불러낸다. 무장대와 무관한 주민들, 여성과 노인, 아이들까지 희생되었고, 살아남은 이들마저 오랜 세월 침묵을 강요받았다는 인식 위에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이 작품이 묻는 것은 “무슨 일이 있었는가”가 아니다. “그러한 죽음은 어떻게 가능했는가”라는 질문이다.
소설 속에는 미군정의 폭력성이 드러나는 장면들이 등장한다. 이 부분은 독자에게 불편함을 줄 수도 있다. 역사적 사실 여부를 하나하나 따지려는 시선으로 읽는다면 과장되거나 단정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다. 그러나 이 작품을 역사책의 보조 자료로 읽는 순간, 우리는 문학이 가장 잘할 수 있는 일을 놓치게 된다. 한강의 문장은 사실을 확정하기 위한 언어가 아니다. 그의 언어는 책임을 피할 수 없게 만드는 질문이다.
■ “누가 명령했는가”보다 중요한 것
《작별하지 않는다》가 끝내 놓지 않는 질문은 이것이다. “누가 어떤 명령을 내렸는가”가 아니라, “누가 이 죽음을 가능하게 했는가.” 작가는 책임을 행정 문서나 지휘 체계로 정리하지 않는다. 대신 독자가 그 질문 앞에서 한 발 물러서지 못하도록 붙잡는다. 그 질문은 특정 국가나 특정 권력만을 겨냥하지 않는다. 폭력이 ‘질서’와 ‘안보’라는 이름으로 제도화될 때, 인간은 얼마나 쉽게 잔혹해질 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 소설에서 미군정은 하나의 역사적 주체이자 동시에 상징이다. 그것은 어떤 이름으로든 무고한 죽음을 가능하게 만드는 모든 권력을 가리킨다. 누구의 이름이든 상관없이, 그 순간 책임은 개인의 일탈을 넘어 구조의 문제가 된다.
■ 당신에게 권하는 이유
《작별하지 않는다》는 답을 주는 소설이 아니다. 대신 질문을 남긴다. 그 질문은 역사학이 사료로 검증해야 할 몫이고, 사회가 제도로 성찰해야 할 몫이며, 독자 각자가 윤리적으로 감당해야 할 몫이다. 이 소설을 읽는 동안 우리는 사실 확인의 잣대를 잠시 내려놓고, 작가가 왜 이런 문장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는지를 생각하게 된다. 수십 년간 말해지지 못했던 죽음, 기록에서 지워졌던 아이들의 이름, 침묵 속에서 늙어간 유족들의 시간 앞에서 문학은 때로 거칠고 단호한 언어를 선택한다. 그것은 사실을 왜곡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사실이 지닌 무게를 독자의 몸으로 옮기기 위해서다. 고등학생에게도 이 소설은 어렵지 않다. 다만 가볍지 않다. 읽고 나면 오래 생각하게 되는 책이다.
■ 문학이 불러낸 진실
우리는 이 소설을 통해 한 가지를 알게 된다. 모든 비극에는 기록이 남지만, 모든 진실이 기록으로 시작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어떤 진실은 문학의 언어로 불려 나와야만 비로소 역사 속으로 걸어 들어올 수 있다. 《작별하지 않는다》는 그런 소설이다. 조용히 읽히지만, 쉽게 잊히지 않는다.
[보성에서의 문학산책] 다음 편 예고
다음 연재에서는 일본 작가 시오노 나나미를 만난다. 일본인이지만 평생을 이탈리아에 머물며 서양사의 현장을 직접 기록해 온 그녀는, 동양의 시선으로 유럽 문명을 해석한 독특한 작가다. 특히 한국에서는 《로마인 이야기》를 통해 역사 읽기의 새로운 방식을 제시하며 폭넓은 독자층을 형성해 왔다. 다음 편에서는 《바다의 도시 이야기》를 중심으로, 바다 위에 세워진 도시 베네치아가 어떻게 권력과 상업, 인간의 욕망 속에서 살아남았는지를 살펴본다. 문학과 역사 사이에서, 이번에는 이야기로 읽는 문명사가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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