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충사(五忠祠)는 단순한 문중 사우를 넘어, 지역민과 후손들에게 충절, 효의, 예학 정신을 전수하는 향촌 교육의 장이자 민족정신의 상징적 유산이다. 특히 고려~조선에 걸친 5인의 생애와 행적은 국가 위기 시기마다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분출된 애국심과 민본 사상을 보여준다. 사진=양동율
오충사(五忠祠)는 단순한 문중 사우를 넘어, 지역민과 후손들에게 충절, 효의, 예학 정신을 전수하는 향촌 교육의 장이자 민족정신의 상징적 유산이다. 특히 고려~조선에 걸친 5인의 생애와 행적은 국가 위기 시기마다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분출된 애국심과 민본 사상을 보여준다. 사진=양동율
오충사(五忠祠)는 단순한 문중 사우를 넘어, 지역민과 후손들에게 충절, 효의, 예학 정신을 전수하는 향촌 교육의 장이자 민족정신의 상징적 유산이다. 특히 고려~조선에 걸친 5인의 생애와 행적은 국가 위기 시기마다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분출된 애국심과 민본 사상을 보여준다. 사진=양동율
오충사(五忠祠)는 단순한 문중 사우를 넘어, 지역민과 후손들에게 충절, 효의, 예학 정신을 전수하는 향촌 교육의 장이자 민족정신의 상징적 유산이다. 특히 고려~조선에 걸친 5인의 생애와 행적은 국가 위기 시기마다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분출된 애국심과 민본 사상을 보여준다. 사진=양동율
오충사(五忠祠)는 단순한 문중 사우를 넘어, 지역민과 후손들에게 충절, 효의, 예학 정신을 전수하는 향촌 교육의 장이자 민족정신의 상징적 유산이다. 특히 고려~조선에 걸친 5인의 생애와 행적은 국가 위기 시기마다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분출된 애국심과 민본 사상을 보여준다. 사진=양동율
오충사(五忠祠)는 단순한 문중 사우를 넘어, 지역민과 후손들에게 충절, 효의, 예학 정신을 전수하는 향촌 교육의 장이자 민족정신의 상징적 유산이다. 특히 고려~조선에 걸친 5인의 생애와 행적은 국가 위기 시기마다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분출된 애국심과 민본 사상을 보여준다. 사진=양동율

보성 오충사는 보성을 본관으로 하는 보성 선씨(宣氏)의 시조 증(贈) 자헌대부 이조판서 퇴휴당 선윤지 선생과 선생의 현손(玄孫) 증(贈) 대광보국 승록대부 의정부 우의정 평양공 선형 선생, 8세손 증(贈) 자헌대부 병조판사 친친재 선거이 선생, 9세손 증(贈) 자헌대부 병조판서 매곡 선세강 선생. 10세손 증(贈) 자헌대부 병조판서 강의재 선약해 선생을 배향한 사액사우(賜額祠宇)로서 1871년 훼철된 후 1960년에 복설되어 1961년부터 시림들이 춘추로 향사하고 있으며, 충절과 유학을 숭상하는 지역 정신문화의 상징으로 자리 잡고 있다.

■ 배향 인물 소개(五忠)
* 퇴휴당 선윤지(宣允祉) 선생은 1382년(고려 우왕 8년)에 황명(皇明) 문연각학사(文淵閣學士)로서 봉명동래(奉命東來)하시어, 우왕(禑王)이 호남 관찰사 겸 안렴사(按廉使)를 제수하시니 남해안 일대 특히 조양(兆陽),복홀(伏忽)에 침입한 왜구의 소굴을 소탕하고 관음포 일대에 남아 있던 왜구를 섬멸하여 왜구에게 빼앗겼던 땅을 회복하셨다, 그 후 고려가 멸망하자 충절을 지켜 조선조에 불복하고 이곳 보성으로 내려와 학문과 교화에 힘쓰며 살았는데 주민들이 감화되어 생사당(生祠堂)을 세워 진영을 모시고 한식일에 제사를 지냈으며, 사액(賜額)을 받은 충신이다.
* 평양공 선형(宣炯)선생은 조선 세조 때 이시애의 난을 평정한 공신으로 평양공에 봉해졌으며, 문무를 겸비한 인물로 존경받았다.
* 친친재 선거이(宣居怡) 선생은 임진왜란 당시 부원수로 권율 장군을 도왔으며, 충무공 이순신과는 절친으로 한산도 앞바다의 거북선 전투에서 대승을 거두었고, 충의산에 진을 치고 왜병들과 혈전 중 순절하시니 그날 밤에 하늘에서 빛이 밝은 큰 별이 김해지방에 떨어졌다고 이공 규문 일기에 기록되어 있다.
* 매곡 선세강(宣世綱)선생은 병자호란 시 안동 영장으로 활약하다 순절하였으며, 충의와 절개의 상징으로 평가받는다.
* 강의재 선약해(宣若海)선생은 사신(使臣)으로 청(淸)나라에 가서 굴복(屈服)하기를 위협(威脅)하였으나 굴하지 아니 하시고 명(明)나라 의리를 밝힘으로 심양일기(瀋陽日記)를 남기신, 청백리의 상징이자 지역 유학 발전에 이바지하셨다.

■ 연혁 및 변화
1739년(영조15년)에 보성 옥산동(玉山洞) 지역 유림과 선씨 문중이 중심이 되어‘옥산사(玉山祠)’로 칭함.
1831년(순조31년) 옥산사를 오충사로 사액(賜額)함.
1868년(고종5년) 훼철령(毁撤令)이 반포(頒布)됨.
1909년 보성 선정자가(宣亭子街)에 보성읍(현재의 보성역) 부근에 유허비를 세움.
1960년 현재의 위치에 사당 본전·재실·홍살문·경모문 등 시설 완비 재정비 함.

■ 건축 및 구성(2012년 전라남도민속문화재 제48호로 지정됨)
사당 : 다섯 충신의 위패를 모시고 제향을 올리는 공간.
충의당 : 제향을 준비하고 문중의 유림 교육 및 회합 장소로 사용됨.
홍살문과 경모문: 성스러운 경내를 상징적으로 구분하며 예를 갖춘 출입 구조
묘정비 및 유허비: 배향 인물의 업적과 사당의 역사적 변화 과정을 기념

■ 역사적·문화적 의의
오충사(五忠祠)는 단순한 문중 사우를 넘어, 지역민과 후손들에게 충절, 효의, 예학 정신을 전수하는 향촌 교육의 장이자 민족정신의 상징적 유산이다. 특히 고려~조선에 걸친 5인의 생애와 행적은 국가 위기 시기마다 지역에서 자생적으로 분출된 애국심과 민본 사상을 보여준다.

보성군 관계자는 “오충사는 단지 제례 공간이 아니라, 후손들에게 충절의 의미를 깨닫게 하는 산 교육장이며, 우리 지역의 정체성을 바로 세우는 소중한 문화유산입니다.” 라고 강조했다.

보성선씨 대종회 사무국장은 “조선시대 향토 충신 다섯 분의 충절과 유학 정신을 계승·기리는 사당인 오충사(五忠祠)의 역사적 가치와 의미를 군민과 방문객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한다.” 라고 밝혔다.

위치 안내: 전라남도 보성군 보성읍 중앙로 80(오충서원)
참고자료: 보성선씨 문중 자료, 전라남도 문화유산 해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