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교금융조합'(사진)은 단순한 지역 농민조합이 아니라, 식민지 시대 조선의 금융 구조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비은행 금융기관의 일환이었다. 금융조합의 기원은 대한제국 시기 소농 금융기구를 육성하려는 시도에서 비롯됐다. 당시 대한제국 정부는 고리대와 일본인의 저당 대부로 인한 농민들의 피폐화에 대응하기 위해 화폐제도 개혁과 중앙은행 설립을 추진했다. 이러한 정책을 바탕으로 지역 단위의 금융조합 설립이 진행되었으며, '벌교금융조합'도 이러한 맥락에서 설립된 기관 중 하나였다. 사진=문금주
일제강점기, 금융조합의 팽창. 일제가 조선을 강제 병합한 직후부터 벌교를 포함한 전국 각지의 금융조합은 농업협동조합의 전신으로 출발했으나, 점차 협동조합적 성격을 잃고 금융기관으로 변모했다. 특히 1920년대 들어 공동구입과 위탁판매 등 협동 기능이 급감했으며, 1930년대 중반에야 일부 기능이 재개되며 명맥을 유지했다. ‘벌교금융조합’도 이러한 흐름 속에서 농민을 위한 금융기관이기보다는, 식민지 경제구조에 편입된 지역 금융기관으로서의 성격이 강해졌다. 관람 시간: 9:00~18:00. 사진=문금주
벌교와 같은 농촌 지역에서 금융조합은 겉으로는 농민 지원 조직으로 보였지만, 실질적으로는 토지 집적과 식민지적 농업 구조 강화를 위한 수단이 되기도 했다. 일본인 지주의 토지 확장을 도왔으며, 고리대금보다 조건은 나았지만 실질적으로는 일본 자본의 농촌 침투 경로로 작용했다는 점에서 ‘벌교금융조합’의 존재는 이중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사진=문금주
개관 당시 금고. 당시 조선에는 ‘조선은행'(중앙은행), ‘조선식산은행'(산업금융), ‘보통은행'(일반은행) 외에도 ‘조선금융조합연합회’, ‘금융조합’, ‘동양척식주식회사’, ‘신탁회사’, ‘무진회사’ 등 다양한 금융기관이 있었다. 이 중 ‘벌교금융조합’은 ‘조선금융조합연합회’ 산하 일원으로, 농민 대상 대출, 토지 저당 대부, 조합원의 자금 융통 등의 업무를 담당했다. 사진=문금주

벌교는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의 무대이자, 격동의 한국 근현대사가 지나간 땅이다. 그 중심에 있는 붉은 벽돌 건물 ‘벌교금융조합’은 단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다. 일제강점기 양식으로 지어진 이 건물은 관공서로서의 기능을 수행하며 자본과 권력이 결탁했던 역사를 증언하고 있으며, 현재도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근현대사의 아픈 그림자를 보여주고 있다.

소설 ‘태백산맥’은 해방 이후 이념의 충돌, 민중의 고통, 그리고 친일 청산 실패의 비극을 강하게 고발한다. 소설 속 ‘벌교금융조합’은 단순한 금융기관이 아니라, 친일 세력의 생존과 정의의 부재를 상징한다.

작품에 등장하는 조합장 ‘송기묵’은 일제강점기부터 금융조합에 근무해온 전형적인 친일 인사로, 식민지 권력에 협조하며 재산을 축적했다. 해방 후에도 고리대금업을 통해 경제적 기반을 유지했고, 서울에 딸을 유학 보내며 화려한 삶을 누렸다. 하지만 그는 결국 좌익 청년들에게 처형당하는 결말을 맞는다.

“금융조합이라는 것이 결국은 돈 장사이고 보면 그의 이재 솜씨는 멋 부리는 것보다 한 수가 더 앞질러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 ‘태백산맥’ 1권, 284쪽

이 이야기는 단순한 소설적 허구가 아니다. 실제 역사 속에서도 친일 세력은 해방 이후 제대로 처벌받지 않았다. 오히려 정치·경제적 기득권을 유지하며 현대사를 주도했다.

‘벌교금융조합’은 단순히 오래된 건축물이 아니라, 오늘을 비추는 거울이다. 이 붉은 벽돌 건물은 여전히 끝나지 않은 역사적 과제를 상징한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여전히 생활고에 시달리고, 친일 세력의 후예들은 정치·언론·재벌 중심에 자리하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역사 왜곡과 과거 미화는 2020년대에도 계속되고 있다.

벌교라는 지역의 이야기를 넘어, 이 땅 전체가 마주해야 할 ‘청산되지 못한 과거’에 대한 질문이 이 붉은 벽돌 건물 안에 살아 있다.

벌교를 걷다 이 건물을 마주한다면, 그저 오래된 건물이라 여기지 말자. 벽돌 하나하나가 우리에게 말을 걸고 있다.

우리는 과연 과거를 바로 보았는가?
정의롭지 못했던 시작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 않은가?

소설 ‘태백산맥’ 속 ‘벌교금융조합’은 아직도 말하고 있다. 우리가 외면한 진실과, 우리가 외면해온 책임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