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교육청벌교도서관에 소장된 '태백산맥' 자료들. 초판본부터 개정판, 청소년판, 만화판까지 다양한 형태로 비치되어 있어, 조정래 작가와 깊은 인연을 지닌 벌교가 '태백산맥'의 살아 있는 문학 공간임을 보여준다. 사진=문희옥
‘할머니의 사랑’ 굶주림에 지친 손주들을 걱정한 할머니가 몰래 음식을 들고 찾아와 품에 안는 모습을 상상한 장면이다. 전쟁이 가장 큰 상처를 남긴 대상은 어린이였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장면이다. 이미지=생성형AI(문희옥)
별빛 아래 다시 만난 살아남은 사람들. 전쟁이 끝난 뒤 살아남은 사람들이 염상진의 무덤을 찾아 그의 삶과 희생을 기리는 모습을 상상한 장면이다. 산마다 봉홧불이 타오르는 환상은 사라지지 않는 역사와 기억을 상징한다. 이미지=생성형AI(문희옥)

■ 시작하는 말

그동안 중국, 일본, 프랑스, 그리고 한국의 대표 작가들과 작품을 함께 만나보았다. 이번 마지막 연재는 우리 문학을 대표하는 조정래 작가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이다. 조정래 작가는 전남광주통합특별시 보성군 벌교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으며 그때의 경험으로 이 지역의 역사와 삶을 문학으로 승화시켰다. 『태백산맥』은 해방 이후부터 한국전쟁까지 이어지는 격동의 시대를 배경으로, 서로 다른 이념 속에서도 끝내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 했던 사람들의 삶을 담아낸 작품이다. 단순히 좌우의 대립을 그린 소설이 아니라, 시대가 한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바꾸어 놓는지를 깊이 있게 보여 주는 한국 현대문학의 대표작이다.

■ 『태백산맥』 줄거리

소설은 벌교를 중심으로 정하섭, 소화, 김범우, 염상진, 하대치 등 수많은 인물들의 삶을 따라간다. 해방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했고, 이념은 사람들을 서로 갈라놓았다. 가족과 친구가 적이 되고, 평범한 주민들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전쟁의 한가운데로 내몰린다. 그러나 조정래는 단순히 전쟁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절망 속에서도 서로를 지키려는 사랑과 희생, 인간에 대한 믿음을 끝까지 놓지 않는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역사는 결국 사람이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깊은 울림을 전한다.

■ 태백산맥을 읽고 인상 깊었던 장면은?

가장 오래 마음에 남은 장면은 전쟁이 어린아이들에게 남긴 상처였다. 굶주린 두 손주를 걱정한 할머니가 몰래 음식을 들고 찾아오는 장면은 전쟁의 참혹함보다 가족의 사랑을 더욱 크게 느끼게 한다. 반갑게 달려오는 어린 손자와, 기쁨과 미안함을 함께 감추지 못하는 손녀의 모습은 읽는 이의 마음을 먹먹하게 만든다. 전쟁의 가장 큰 피해자는 총을 든 사람이 아니라 어린아이들이라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장면은 염상진의 무덤가이다. 살아남은 사람들은 별빛 아래 그의 무덤을 찾아 지난날을 회상한다. 하대치는 산마다 다시 봉홧불이 타오르는 환상을 바라보며 역사의 의미를 되새긴다. 승리도 패배도 아닌, 시대를 살아낸 사람들의 슬픔이 깊은 여운을 남긴다.

반대로 가장 따뜻했던 장면은 자애병원의 헌혈이다. 이지숙과 염상진은 서로 다른 처지에 있었지만 한 생명을 살리기 위해 자신의 피를 내어준다. 전명환 원장은 위험을 무릅쓰고 그들을 도와준다. 총성이 이어지는 전쟁 속에서도 사람을 먼저 생각했던 인간애는 『태백산맥』이 전하는 가장 아름다운 메시지 가운데 하나이다.

■ 태백산맥을 읽고 문학기행을 떠난다면?

소설을 읽었다면 꼭 한 번 벌교를 걸어보기를 권하고 싶다. 가장 먼저 찾아갈 곳은 벌교홍교이다. 작품 속 횡개다리의 배경으로, 수많은 인물들의 발길이 오갔던 상징적인 공간이다. 이어 보성여관은 소설 속 남도여관의 배경으로 당시 시대 분위기를 고스란히 느낄 수 있다. 그리고 옛 벌교금융조합 건물은 식민지 시대 경제와 권력의 흔적을 간직한 역사 현장이며, 부용교(소화다리)는 사랑과 이별, 삶과 죽음이 교차했던 작품의 상징적인 장소이다. 마지막으로 조성면 주월산 정상에 오르면 아름다운 들판과 율어면의 산줄기가 한눈에 펼쳐진다. 소설 속 염상진이 작전을 구상했던 공간을 떠올리며 작품의 마지막 여운을 되새겨 볼 수 있다.

■ 마무리

『태백산맥』은 단순히 과거를 이야기하는 소설이 아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사람을 이해하는 마음과 평화의 소중함을 다시 묻는 작품이다. 벌교의 골목과 다리, 산과 들을 직접 걸으며 소설을 읽는다면 책 속의 이야기는 어느새 살아 있는 역사로 다가올 것이다.

그동안 「보성에서의 문학산책」을 함께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앞으로도 문학과 역사가 만나는 현장에서 더 깊은 이야기로 다시 찾아뵙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