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성군 벌교읍 선근공원에 세워진 안규홍 의병장 동상. 머슴 출신이었던 안규홍 의병장은 신분의 벽을 뛰어넘어 의병을 이끌며 전남 일대에서 항일투쟁을 전개한 보성의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다. 사진=문금주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아 우리 지역이 낳은 대표적인 독립운동가이자 의병장인 안규홍 의병장의 숭고한 애국정신을 다시 한번 되새겨 본다.

안규홍(安圭洪, 1879년 4월 10일~1910년 5월 5일) 의병장은 보성 출신으로 대한제국 말기 정미의병 항쟁을 이끈 전남 지역의 대표적인 의병장이다. 나라의 운명이 위태롭던 시기, 그는 자신의 안위보다 조국의 독립을 먼저 생각하며 항일 무장투쟁의 선봉에 섰다.

1907년 일제가 대한제국 군대를 강제로 해산하자 안규홍 의병장은 국권 회복의 뜻을 품고 ‘일심계(一心契)’를 조직했다. 그는 군량미와 자금을 마련하며 의병 활동의 기반을 다졌고, 이후 강성인 의병장과 함께 70여 명 규모의 의병부대를 조직해 의병대장으로 추대됐다.

안규홍 의병부대는 1908년부터 1909년까지 보성을 비롯해 순천·고흥·장흥·광양·함평 등 전남 일대를 중심으로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이며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특히 1908년 2월 보성으로 진입하던 일본군을 기습해 큰 승리를 거둔 ‘파청대첩’은 안규홍 의병장의 뛰어난 전술과 지략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전투로 평가된다. 같은 해 8월 진산에서 일본군 수비대와 기병대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진산대첩’ 역시 의병사에 길이 남을 전과로 기록되고 있다.

1909년에는 함평의 심남일 의병장과 연합해 유격전을 펼치며 항일투쟁을 이어갔으나, 같은 해 9월 25일 보성에서 일본 토벌대에 체포됐다. 이후 대구감옥에 수감된 그는 끝까지 굴하지 않았으며, 1910년 5월 5일 순국했다.

안규홍 의병장의 나라 사랑과 희생정신은 후대에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2006년 건국포장을 추서했으며, 오늘날에도 보성의 자랑스러운 독립운동가로 기억되고 있다.

호국보훈의 달인 6월은 나라를 위해 헌신한 순국선열과 호국영령의 희생을 기리는 시간이다. 특히 우리 고장 보성이 배출한 안규홍 의병장의 삶은 지역민들에게 애국심과 공동체 정신의 소중함을 일깨워 주고 있다.

우리가 누리는 자유와 평화는 이름 없이 나라를 위해 헌신한 선열들의 희생 위에 세워져 있다. 안규홍 의병장이 보여준 불굴의 의지와 나라 사랑의 정신을 기억하며, 그 뜻을 미래 세대에게 이어가는 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몫일 것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보성의 영웅, 안규홍 의병장. 그의 뜨거운 애국정신은 오늘도 우리 가슴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 참고자료: 대구공소원 판결문(1909년 5월 31일), 독립운동사자료집 별집 제1집, 독립운동사 제1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