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여름 저녁, 채동선음악당에 벌교의 갯벌과 산, 골목과 사람들의 이야기가 음악으로 흘러나왔다. 제7회 대한민국민족음악제 무대(2026년 7월 16일)에 오른 ‘벌교의 교향시, 벌교칸타타’는 벌교 출신 음악가 채동선의 작품과 조정래의 대하소설 『태백산맥』이 한 무대에서 만난 창작공연이었다.
- 채동선은 누구인가?
채동선은 1901년 벌교에서 태어난 우리나라 근대음악의 선구자다. 그는 3·1운동에 참여했다가 학교에서 퇴학당한 뒤 일본과 독일에서 바이올린과 작곡을 공부했다. 귀국 후에는 연주자와 작곡가, 음악교육자로 활동하면서 서양음악의 형식에 우리 민족의 정서와 전통음악을 담아내고자 했다.
일제강점기 말에는 친일 활동과 일제의 전쟁 협력을 거부하고 외부 활동을 중단한 채 민요와 국악을 채보하고 편곡했다. 광복 이후에는 고려음악협회를 창립하고 교성곡 ‘한강’과 ‘조국’ 등을 작곡하며 민족음악의 길을 넓혔다. 식민지배와 전쟁, 피란의 고통 속에서도 음악을 포기하지 않았던 그는 음악으로 민족의 아픔을 위로하고 새로운 희망을 노래한 예술가였다.
그의 음악은 어렵고 멀리 있는 서양음악이 아니었다. ‘고향’, ‘향수’, ‘내 마음은’ 등의 가곡에는 고향을 떠난 사람의 그리움과 우리말의 아름다운 정서가 담겨 있다. 채동선의 음악이 오늘날에도 사랑받는 까닭은 그의 작품이 한 개인의 감정을 넘어 우리 민족이 겪은 아픔과 희망을 함께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 『태백산맥』은 어떤 소설인가?
조정래의 『태백산맥』은 해방 직후부터 한국전쟁에 이르는 시대를 벌교를 중심으로 그려낸 대하소설이다. 작품에는 정하섭과 소화, 김범우, 염상진, 하대치 등 서로 다른 생각과 처지에 놓인 수많은 인물이 등장한다.
해방의 기쁨은 오래가지 못하고 좌우 이념의 충돌이 격해지면서 가족과 이웃, 친구들은 서로 갈라진다. 평범하게 살아가던 주민들도 자신의 뜻과 상관없이 시대의 소용돌이에 휘말린다. 그러나 『태백산맥』은 단순히 좌익과 우익의 대립이나 전쟁의 승패만을 다룬 작품은 아니다. 굶주림 속에서도 가족을 지키려는 사랑, 위험에 처한 사람을 살리려는 희생, 서로 다른 생각을 지녔어도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모습을 깊이 있게 보여준다.
소설의 무대인 벌교에는 홍교와 보성여관, 옛 벌교금융조합, 부용교 등 작품 속 공간을 떠올리게 하는 장소가 지금도 남아 있다. 그래서 『태백산맥』은 책 속에만 머무는 이야기가 아니라 벌교의 골목과 다리, 갯벌과 산을 걸으며 직접 만날 수 있는 살아 있는 문학이라고 할 수 있다.
- 벌교칸타타는 어떤 공연인가?
‘칸타타’는 이탈리아어로 ‘노래하다’라는 뜻에서 나온 말이다. 독창과 합창, 여러 악기의 연주를 통해 하나의 이야기나 주제를 들려주는 음악 형식이다. 쉽게 말하면 여러 곡의 노래와 연주를 연결해 긴 이야기를 들려주는 음악극이라고 이해하면 된다.
‘벌교칸타타’는 채동선의 음악과 『태백산맥』의 이야기를 결합해 벌교의 역사와 자연, 사람들의 삶을 음악으로 보여주기 위해 기획됐다. 기존 공연이 음악만 들려주는 데 머물렀다면, 이번 무대는 배우의 이야기와 연기, 성악과 기악 연주를 함께 배치해 관객들이 음악의 배경과 소설의 내용을 쉽게 이해하도록 했다. 모노극 배우 지정남은 소설 속 소화가 다시 살아 돌아온 듯한 모습으로 무대에 등장했다. 구성진 전라도 사투리와 『태백산맥』의 주요 대사를 통해 관객을 소설 속 벌교로 이끌었고, 채동선의 음악세계가 어떤 시대와 정서를 품고 있는지도 시작부터 끝까지 안내했다. 그 결과 채동선의 음악과 『태백산맥』이라는 서로 다른 두 서사가 한 편의 이야기처럼 자연스럽게 어우러졌다. 공연은 해방의 기대, 전쟁과 이별, 고난을 딛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마음, 벌교와 조국을 향한 사랑으로 이어졌다. 특히 ‘나의 노래’와 ‘조국환타지’는 성악과 연주가 절정을 이루며 가장 큰 박수와 호응을 받았다. 관객들은 채동선의 음악 속에서 민족의 아픔뿐 아니라 시련을 이겨내려는 희망을 함께 느꼈다.
- 벌교칸타타를 보고 느낀 소감은?
공연을 보고 난 뒤 가장 먼저 떠오른 생각은 “이 무대는 벌교에서만 만들 수 있는 공연”이라는 것이었다. 채동선의 음악은 벌교의 자연과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품고 있었고, 『태백산맥』은 벌교 사람들이 겪어야 했던 분단과 전쟁, 가난과 이념의 상처를 이야기했다. 음악과 소설이 만나자 벌교의 역사는 책 속의 기록을 넘어 살아 움직이는 노래가 됐다. 관객들과 함께 부른 ‘새야 새야 파랑새야’도 잊기 어려운 장면이었다. 처음에는 출연진의 노래를 듣던 관객들이 한 사람씩 목소리를 보태면서 공연장은 어느새 하나가 됐다. 나이도 사는 곳도 달랐지만, 그 순간만큼은 모두가 같은 노래를 부르는 벌교 사람이었다.
공연이 끝난 뒤 관객들은 성악가와 배우, 연주자들에게 다가가 자연스럽게 기념사진을 찍었다. 무대 위의 예술가와 객석의 주민이 멀리 떨어져 있지 않고, 서로 인사를 나누며 공연의 여운을 함께하는 모습도 인상적이었다. 다만 좋은 공연에 비해 홍보가 충분하지 않아 관객이 100여 명에 머물렀고, 뜨거운 박수 속에서도 별도의 앙코르 없이 막을 내린 점은 아쉬움으로 남았다. 김정호 음악감독은 공연을 마무리하며 2027년 채동선음악당 건립 20주년을 맞아 더 뜻깊은 무대로 다시 만날 것을 약속했다. 아울러 올해 10월 20일 열릴 예정인 ‘동물음악대’ 공연에도 지역민들의 관심과 참여를 부탁했다.
마감하는 말
지역의 문화는 공연을 만드는 사람들만의 힘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객석을 채우고 박수를 보내며 다음 공연을 기다리는 주민이 함께할 때 비로소 지역을 대표하는 문화가 된다. 벌교칸타타가 해마다 더 많은 군민과 관광객이 찾는 공연으로 성장해 채동선의 음악과 『태백산맥』의 감동을 전국에 알리기를 기대한다. 다음 공연에는 가족과 이웃의 손을 잡고 채동선음악당을 찾아, 벌교가 들려주는 특별한 노래를 함께 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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