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물건을 사고파는 곳을 넘어 사람을 만나고 세상 소식을 나누던 그 시절, 예전 벌교 사람들에게 장날은 달력에 표시해 두고 기다리던 특별한 날이었다. 장을 보러 가는 날이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읍내로 나와 사람을 만나고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를 듣는 날이기도 했다.
이른 아침부터 농촌 마을 사람들의 발걸음은 벌교 읍내로 향했다. 직접 농사지은 채소를 보따리에 담아 나온 사람, 바다에서 잡은 생선을 들고 나온 사람, 필요한 생활용품을 사기 위해 장터를 찾은 사람들까지 장날이면 평소 조용하던 읍내가 사람들로 북적였다. 벌교 장날은 물건만 오가는 날이 아니었다. 사람이 모이고, 이야기가 모이고, 웃음이 모이는 날이었다.
장날 아침은 유난히 일찍 시작됐다. 아직 해가 완전히 떠오르기도 전에 사람들은 밭에서 거둔 채소와 곡식, 달걀 등을 챙겨 집을 나섰다. 집에서 정성껏 준비한 물건을 보따리에 싸 들고 읍내로 향했다. 무거운 짐을 이고 걸어오는 사람도 있었고, 버스를 타고 장을 보러 나오는 사람도 있었다. “오늘 장날이니까 읍내 나가야지”라는 짧은 말 한마디에는 장날을 기다리는 설렘이 담겨 있었다. 장을 보면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었고, 무엇보다 오랜만에 아는 사람을 만날 수 있었다. “누구네 아들이 군대 갔다더라”, “누구네 딸이 시집갔다더라”, “올해는 농사가 잘됐다더라”는 소식이 오갔다. 휴대전화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 장터는 가장 빠르고 생생한 동네 소식통이었다.
장날이면 벌교 읍내는 평소보다 훨씬 활기를 띠었다. 좌판에는 싱싱한 채소와 과일이 놓였고, 생선가게에는 바다에서 올라온 각종 생선과 해산물이 가득했다. 옷과 신발, 생활용품, 농기구 등 살아가는 데 필요한 물건들도 장터 곳곳에 자리했다. “얼마요?”, “좀 깎아주시오”, “다음 장날에 또 봅시다” 하며 흥정하는 목소리 사이로 웃음소리가 오갔다. 장터 한쪽에서는 물건을 파는 상인들의 목소리가 들리고, 또 다른 곳에서는 엿장수와 아이스케이크 장수가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때로는 장터에 악극단이나 공연이 들어서기도 했다.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은 물건을 사는 것뿐 아니라 공연을 구경하며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그 시절 장터는 생활과 문화가 함께 어우러진 벌교 사람들의 큰 마당이었다.
장날에 가장 많이 오간 것은 어쩌면 물건보다 사람들의 인사였는지도 모른다. “오랜만이네”, “어디서 왔어?”, “밥은 먹었어?” 같은 인사가 장터에서는 자연스럽게 오갔다. 농사일로 바빠 자주 만나지 못했던 이웃도 장날이면 얼굴을 마주했고, 멀리 떨어져 사는 친척이나 친구를 우연히 만나기도 했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면 장바구니를 내려놓고 한참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다. 장을 다 보고도 곧장 집으로 돌아가지 않았다. 국밥 한 그릇을 함께 먹고, 찻집이나 식당에 들러 이야기를 나누며 장날의 여유를 즐겼다. 그래서 장날은 장을 보러 나온 하루이면서 사람을 만나러 나온 하루이기도 했다.
장날이 되면 벌교 읍내 전체가 하나의 큰 장터처럼 활기를 띠었다. 시장으로 향하는 길에도 사람이 넘쳤고, 가게 앞에도 손님이 모였다. 골목마다 장을 보러 나온 주민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읍내 상점들도 장날을 기다렸다.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이 식당에 들르고, 옷가게와 잡화점에서 필요한 물건을 구입했다. 장날은 시장뿐 아니라 읍내 전체가 함께 살아나는 날이었다. 대형마트도, 인터넷 쇼핑도 없던 시절, 시장과 장터는 사람들의 생활 중심지였고, 벌교 장날은 주변 마을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이는 지역 공동체의 중심이었다.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의 생활도 달라졌다. 자동차가 늘어나고 대형마트와 인터넷 쇼핑이 일상이 되면서 예전처럼 장날을 기다리는 사람들의 모습도 점차 줄어들었다. 젊은 세대에게 장날의 풍경은 이제 낯선 옛이야기가 되어가고 있다. 하지만 오랜 세월 벌교 장터를 기억하는 어르신들에게 장날은 여전히 생생하다. “옛날 장날에는 사람이 참 많았지”, “장 보러 가는 재미가 있었어”, “장날이면 아는 사람 하나는 꼭 만났어”라는 말속에는 단순한 시장의 추억만 담겨 있는 것이 아니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고 서로의 안부를 살피며 살아가던 공동체의 기억이 담겨 있다.
요즘은 필요한 물건을 집에서 주문한다. 휴대전화 하나면 음식도, 옷도, 생활용품도 집 앞까지 배달되는 편리한 세상이다. 하지만 편리해진 만큼 우리는 사람을 만나는 시간을 잃어버린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예전 장날에는 물건을 사기 위해 사람들이 모였지만, 사람들이 장터에서 얻어 간 것은 물건만이 아니었다. 친구의 안부를 들었고, 이웃의 소식을 들었으며, 오랜만에 만난 사람과 웃으며 이야기를 나눴다. 장터는 물건을 거래하는 공간이면서 사람들의 마음을 이어주는 공간이었다.
그래서 벌교 장날의 기억은 시장의 모습만으로 설명할 수 없다. 그곳에는 삶이 있었고, 웃음이 있었으며, 어려운 형편을 서로 나누던 이웃의 정이 있었다. 무거운 장바구니를 들고 읍내로 향하던 어머니의 모습, 장터 한쪽에서 친구를 만나 한참 이야기를 나누던 아버지의 모습,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아이 손에 쥐여주던 작은 간식 하나까지. 이제는 지나간 시간이 되었지만, 그 장면들은 여전히 우리 마음속에 따뜻한 고향의 풍경으로 남아 있다.
장터의 모습은 변해도 장날의 기억까지 사라져서는 안 된다. 누군가에게는 평범했던 하루가 시간이 흐른 뒤에는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소중한 고향의 역사가 되기 때문이다. 사라져 가는 벌교의 옛길과 그 길을 걸었던 사람들의 이야기, 그리고 장날이면 유난히 활기를 띠었던 사람 냄새 가득한 벌교 읍내의 그날을 오늘도 마음 깊이 기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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