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시 벌교는 인구 4만 명을 웃돌 만큼 활기가 넘쳤으며, 장날이면 홍교다리 주변 웃장으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농촌에서 가져온 농산물과 생활용품을 사고팔며 사람과 사람의 정이 오가던 곳으로, 벌교 사람들에게 장날은 물건을 사고파는 날을 넘어 서로의 안부와 세상 소식을 나누는 특별한 날이었다. 생성형 AI 이미지 = 문금주
어린 시절 친구들과 건너던 다리, 장날이면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지던 길. 벌교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풍경이 있다. 읍내를 가로질러 흐르는 벌교천과 그 위에 자리한 홍교다.
오늘도 벌교천의 물은 흐르고 사람들은 홍교를 건넌다. 하지만 오래전 벌교 사람들에게 벌교천과 홍교는 단순한 하천과 다리가 아니었다. 누군가에게는 학교에 가던 길이었고, 누군가에게는 장날이면 읍내로 향하던 길이었다. 친구들과 장난치며 뛰어가던 어린 시절의 길이었고, 부모님의 손을 잡고 세상을 배우던 고향의 길이었다. 그래서 벌교 사람들의 기억 속 홍교는 지금도 단순한 다리가 아니다.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고, 마을과 읍내를 이어주며, 과거와 오늘을 이어주는 ‘시간의 다리’다.
벌교천은 오랜 세월 벌교 사람들의 삶과 함께 흘러왔다. 계절이 바뀌면 물빛도 달라졌고, 비가 많이 내리는 날에는 힘차게 물살이 일었다. 맑은 날이면 조용히 읍내 풍경을 비추었다. 어린 시절 벌교에서 자란 아이들에게 벌교천은 자연 그대로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지금처럼 놀이터가 많지 않았던 시절, 아이들은 물가에서 친구들과 장난을 치고 돌을 던져 물수제비를 뜨며 놀았다. 계절마다 달라지는 냇물의 모습을 바라보며 해가 저무는 줄도 모르고 시간을 보냈다.
어른들에게 벌교천은 생활과 맞닿아 있는 길이었다. 밭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 읍내에 볼일을 보러 가는 길에도 벌교천은 늘 곁에 있었다. 누군가에게는 그저 지나치는 하천이었지만,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고향의 풍경이었다. 세상은 변했지만 물은 여전히 흐른다. 사람들은 세월 따라 달라졌지만 벌교천은 오늘도 벌교의 시간을 품고 있다.
“홍교를 건너면 벌교 읍내였지.”
오래전 벌교 사람들에게 홍교는 생활의 기준점과도 같은 곳이었다. 학교에 가기 위해 건넜고, 읍내에 볼일을 보러 갈 때도 건넜다. 특히 장날이면 홍교 위로 수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이 이어졌다. 손에는 장바구니를 들고, 등에는 짐을 지고, 아이의 손을 잡은 어머니와 장을 보러 나온 사람들의 모습이 다리를 가득 채웠다. 누군가는 장을 보기 위해, 누군가는 물건을 팔기 위해 읍내로 향했다. 은행이나 관공서에 볼일이 있는 사람들도 홍교를 건넜다. 그리고 하루의 볼일을 마치면 다시 홍교를 지나 집으로 돌아왔다. 홍교는 단순히 물길을 건너는 다리가 아니었다. 사람들의 하루가 시작되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어린 시절의 다리는 어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넓은 세상이었다. 학교가 끝나면 친구들과 함께 홍교를 건넜다. 누가 먼저 도착하는지 달리기도 하고, 난간에 기대어 아래로 흐르는 물을 바라보기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별것 아닌 풍경이었다. 하지만 그때는 친구들과 함께하는 모든 순간이 즐거웠다.
“내일 또 만나자.”
그렇게 인사를 나누며 집으로 향하던 아이들. 세월이 흘러 그때 함께 홍교를 건넜던 친구들은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고향을 떠난 사람도 있고, 여전히 벌교를 지키며 살아가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기억 속 친구들은 여전히 어린 모습 그대로다. 홍교 위를 뛰어가던 아이들, 책을 보자기에 싸서 들고 집으로 돌아가던 아이들. 그때는 몰랐다. 그 평범했던 순간들이 훗날 가장 소중한 추억이 될 줄은.
홍교를 건너던 것은 사람만이 아니었다. 장날의 소식이 마을로 전해지고, 누군가의 결혼 소식과 이웃의 안부도 사람들의 발걸음을 따라 오갔다. 휴대전화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었다. 누군가를 만나야 안부를 알 수 있었고, 사람이 직접 움직여야 소식이 전해졌다. 그 시절 홍교는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가장 가까운 길이었다. 기쁜 소식도, 슬픈 소식도 다리를 건넜다. 그래서 옛 다리는 물 위에 놓인 구조물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사람들의 삶과 삶 사이에 놓인 마음의 길이었다.
지금도 홍교를 건너는 사람들은 많다. 젊은이에게는 매일 지나가는 길일 수 있고, 관광객에게는 벌교를 찾았을 때 만나는 역사와 문화의 공간일 수 있다. 하지만 오래전부터 벌교에서 살아온 어르신들에게 홍교는 조금 다르다. 그곳에는 자신의 어린 시절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부모님의 손을 잡고 건너던 다리, 친구들과 웃으며 뛰어가던 다리, 장날이면 사람들로 북적이던 다리, 그리고 세월이 흘러 자녀의 손을 잡고 다시 건넜던 다리. 한 사람의 인생이 흐르는 동안 홍교는 수많은 발걸음을 묵묵히 받아주었다. 어린아이의 작은 발걸음도, 삶의 무게를 안고 걷는 어른의 발걸음도, 고향을 떠나며 마지막으로 바라본 사람의 발걸음도 그곳에 머물렀다.
그래서 우리는 홍교를 단순히 건너온 것이 아니다. 어쩌면 우리는 그 다리 위에서 시간을 건너온 것인지도 모른다. 벌교천의 물은 오늘도 흐른다. 어제의 물은 이미 흘러갔고, 오늘의 물도 내일이면 다시 흘러갈 것이다. 세월도 물처럼 흘러가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 그래서 지나간 시간을 더욱 소중하게 기억하게 된다.
벌교의 역사는 책 속에만 있는 것이 아니다. 오래된 다리와 골목길, 시장과 학교, 그리고 그 길을 오갔던 사람들의 기억 속에도 살아 있다. 누군가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지나온 길이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평생 잊지 못할 고향의 풍경이다.
“예전에 홍교를 건너면 말이야.” “장날에는 저 다리가 사람들로 가득했지.” “어릴 때 친구들과 저기서 놀았어.”
이처럼 평범한 이야기가 하나둘 모이면 한 사람의 추억이 되고, 한 세대의 기억이 된다. 그리고 그 기억은 결국 벌교의 역사가 된다. 오늘도 누군가는 홍교를 건넌다. 내일도 또 누군가는 그 다리를 건널 것이다. 하지만 같은 다리를 건너도 그 위에 남겨진 시간은 사람마다 다르다.
당신은 홍교를 건너며 어떤 시간을 기억하고 있는가. 어쩌면 그 대답 속에서 우리가 잊고 있던 벌교의 옛 모습이 다시 살아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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